2015년 11월 22일 설교요약
본문: 고린도전서 2장 4-5절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라
본문 말씀은 전도는 사람의 지혜의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주관해서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말하는 지혜란 사람의 지혜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적인 지혜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지식적인 지혜로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일을 다 이해하는게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 속한 많은 일들은 영적인 안목이 있어야만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본문에서 말하기를 사람의 지혜의 말로 그동안 전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지혜의 말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거리끼는 것이 되고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실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빌라도를 협박해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분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협박해서 죽인 예수를 구원주라고 하면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겠습니까? 더군다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는데 십자가에 죽은 것은 나무에서 메달려 죽은 것인데, 신명기 21장 22절 23절 관점에서 보면 무슨 이유든 나무에 메달려 죽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존재로 이해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존재로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이해하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이야기하니 얼마나 거리끼는 것이겠습니까?
그리고 헬라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십자가에 죽은 사람은 결국 흉악범입니다. 우리야 예수님께서 모함을 받았고 그리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길이기에 그렇게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 이해하지만 그러나 헬라인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그냥 십자가에 죽은 흉악범으로 이해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해되어지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말하니 얼마나 미련하게 느껴지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을 전한다는 것은 사람의 지혜의 말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전도를 할 때는 사람의 지혜의 말로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어떻게 전도하였느냐? 그가 고백하기를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지혜로 말하는 것으로는 이해 안되는 것이 성령이 역사하면 믿어집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사람의 지혜의 말로 하지 말고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전도함에 있어서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전도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게 생각처럼 안됩니다. 그러면 왜 안되는가? 결국
은 우리가 성령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결국 전도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성령님이 주시는 충만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주시는 충만한 마음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사실 성령 충만한 마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 알 수 없지만 그러나 성령 충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보이는 모습 중에 하나는 영혼을 향한 사랑과 안타까움과 애타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세상을 살 때 그냥 적당히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한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준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선한 행동을 합니다. 약한 사람을 어려운 사람을 보고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약함을 어려움을 단지 육적인 것에만 국한하지 않고 영적으로도 약하고 어려운 사람을 돌보아 줍니다. 그리고 그렇게 영적인 약한 사람을 돌보는 사람을 통해서 일반 사람들은 정을 느끼고 따뜻함을 느끼며 성령 충만한 사람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품으로 오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영광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행동에서 성령의 충만함의 모습이 나타나심과 능력이 보여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을 영광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김정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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