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8월 17일 설교 요약
본문: 마태복음 12장 1-13절 말씀
§ 안식일에 일어난 논쟁 §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시게 되면 안식일을 배경으로 예수님과 바리새인들 사이에서 일어난 두 가지 논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비벼 먹은 일로 바리새인들이 문제를 제기한 사건이고,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신 사건입니다. 이 두 사건은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희는 주어진 본문 말씀을 살펴보면서 우리도 바리새인들처럼 불필요한 규칙이나 형식에만 매달려서 정작 하나님의 뜻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한 주변의 시선 때문에 주님께 나아가기를 주저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를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바라옵기는 우리 성산교회 성도님 여러분 모두가 형식이나 규칙이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하고 먼저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주님으로 말미암아 참된 회복과 자유함을 되찾기를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본문 1-8절 생략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이 밀을 먹은것을 가지고 트집을 잡아 올 때 이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비난에 대해 구약에서 세 가지 예를 드시며 반박을 하셨습니다. 첫째, 다윗과 그 부하들이 진설병을 먹은 것은 분명 율법을 위반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까지 제자들의 행동을 옹호하면서 이 사건을 언급하시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가 법률상의 사소한 절차보다 우선된다는 것, 예수님은 구약 율법이 아니라 바리새인들의 구전 율법의 잘못됨을 지적하고 계시다는 것, 선한 일을 위해서는 율법을 어길 수 있다는 것,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의 권위가 예수님의 메시아적 권위를 상징한다는 것 입니다. 이러한 이유가 본문에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두 번째로 언급하시는 것은 제물을 준비하고 드리는 것은 분명 행위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안식일 율법을 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벌을 받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더욱 충격적인 말씀을 하시는데,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이 충격적인 선언에 할 말을 잃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율법을 어기고도 괜찮은 제사장들보다 더 크실 뿐 아니라, 제사장들이 사역하는 성전보다도 더 크신 분입니다. 또한 성전보다 더 크신 예수님은 당연히 안식일보다도 더 크십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이러한 권한을 가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거기까지 보고있지 못할뿐더러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예수님이 세 번째 예로 드시는 것은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라는 호세아 6장 6절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원래 안식일과 안식일에 관한 율법은 사람들에게 평안과 안식을 주기 위해 제정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 율법을 지키는 일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지워 주신 짐이 아니라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지닌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것이지요.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인 평안과 안식을 주실 수 있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고 율법의 조문으로 사람을 얽매는 것이 아니라 참된 자유와 안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이 모습이 비단 2000년 전 바리새인들만의 이야기일까요? 우리 역시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본질을 잊어버린 채, 형식과 규칙에 얽매일 때가 얼마나 많은지 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포하심으로, 모든 율법 위에 당신이 계심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진정한 안식은 율법의 조항을 기계적으로 지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나아올 때 비로소 주어지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우리 성산교회 성도님 여러분 모두가 안식일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쉼과 자유, 그리고 평안을 누리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 우리가 손을 내밀 때 주님은 회복시켜주십니다.
본문 9-13절 생략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일로 바리새인들과 대립한 곳을 떠나 회당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제자들이 보리 이삭을 비벼 먹은 안식일과 이 사건이 있었던 안식일은 다른 날이었습니다. 회당에는 한쪽 손이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사람은 예수님이 병을 고치신다는 소문을 듣고 낫고자 수소문해서 찾아왔을 것입니다. 손이 '말랐다'는 것은 팔을 접었다 폈다 할 수 없는 상황을 묘사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실 것을 직감했습니다. 이미 예전에도 예수님이 안식일에 가르치시고 치료하셨다는 소문을 들었던 터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리려고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은지 물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에게 어떻게든 문제가 될 만한 꼬투리 하나만 잡으면 고발하려고 달려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루라도 빨리 낫고 싶어하는 병자의 마음을 헤아리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어떠한 행함을 보여주심으로 이 병자를 고쳐주셔서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을 겁박하려고 했었는데,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속내를 파악하시고 교묘하게 피해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지금 이 손이 마른 병자도 예수님이 안식일에 자기 손을 치료하실 수 있다는 그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고침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안식일 규율에 따르면 이 손이 마른 자는 고침을 받아서는 안되었습니다. 다음 날 치료를 받았으면 받았지, 안식일 당일에 치료를 받는 것은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정죄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병자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함으로 고침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성도님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 병자와 같은 갈망이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시 주변의 시선이나 혹은 '이건 안 될 거야'라는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주님께 나아가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을 내밀라." 주님은 우리의 메마른 손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곳에 당신의 치유와 회복의 능력을 나타내기 원하십니다. 손 마른 사람이 종교 지도자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믿음으로 손을 내밀었을 때 완전한 회복을 경험했던 것처럼, 우리도 주저하는 마음과 불신의 생각을 넘어 믿음으로 주님께 우리의 가장 연약하고 아픈 부분을 내밀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도 바리새인과 같은 딱딱하고 굳은 마음이 자리 잡을 수 있음을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가로막고, 사람을 살리는 일보다 규칙을 앞세우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다른 길을 보여주십니다. 바로 손 마른 사람의 길입니다. 그는 주변의 날카로운 시선과 정죄의 분위기 속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손을 내밀라"는 그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했습니다.
그의 순종은 온전한 회복으로 이어졌고,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온몸으로 증거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안 된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내일 오라’고 미루지도 않으십니다. 바로 지금, 이 예배의 자리에서 ‘네 손을 내밀라’고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두려움까지도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내어드릴 때, 주님께서는 그 손을 붙잡아 주시고 온전하게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우리 성산교회 성도님 여러분 모두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회복과 자유를 누리며, 세상 속에서 선을 행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 강찬웅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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