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27일 설교 요약
본문: 마태복음 10장 34-39절 말씀
§ 검을 주러 왔노라 §
제자들은 평화의 이미지를 기대했지만 예수님은 부드러운 평화의 이미지가 아니라 날카롭게 빚어진 검의 이미지를 제시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검의 의미는 무엇이고 또 예수님께서 굳이 세상에 검을 주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시는 그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의미를 우리에게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희는 본문 말씀을 살펴보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검의 참된 의미는 무엇이며, 또한 그 날카로운 검을 받은 제자로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바라옵기는 우리 성산교회 성도님 여러분 모두가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이 주는 거짓된 평안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의 비밀을 깨닫고, 고난 속에서도 담대히 제자의 길을 걸어가는, 귀한 결단이 있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째, 숨겨진 것이 드러날 때를 두려워하지 말라
본문 34-36절 생략 당시 유대인들과 제자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무조건 온 세상에 평화를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평화를 주러 오셨는데 왜 검을 주러 왔다고 하셨을까요? 여기에 복음의 역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세상 사람들이 기대하는 그런 평화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화는 외적인 갈등이 없는 상태, 즉 모든 것이 조용하고 평온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진정한 평화는 죄인이 회개하고 구원에 이를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는 평화,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평화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참된 평화를 얻기 전에는 때로 엄청난 혼란과 고난을 겪어야 할 경우가 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경고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역설의 핵심입니다.
참된 평화에 이르는 길에는 영적 전쟁이 있고, 세상과의 갈등이 있으며, 때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분열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갈등은 가장 가까운 가족 관계에서도 나타납니다. 가장 사랑해야 할 가족이 신앙 때문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큰 반대자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평화의 왕을 따르는 자들과 그를 거부하는 자들 사이에는 이처럼 갈등과 분열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복음 메시지가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의 향기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사망의 향기가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의 복음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심판의 메시지가 됩니다. 따라서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거부하는 사람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조건 가족과 등지고 살아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혜롭게 처신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8절에서 바울은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최대한 가족들과 화목하게 지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인내해야 합니다. 가족들의 마음이 하루아침에 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때로는 몇 년, 몇 십 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기도하며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진실한 마음을 아시고, 때가 되면 분명히 가족들의 마음을 여시는 역사를 행하실 것입니다. 그 날을 소망하며 하루 하루 묵묵히 믿음으로 살아내는 것이 바로 오늘날 믿지 않는 가정 안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마땅한 모습일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우리 성산교회 성도님 여러분 모두가 복음 때문에 가족 간에 불화가 일어나고 어떠한 핍박을 받는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회복하시고 역사하실 그 날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굳건히 이겨내는 성도님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 예수님의 제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37-39절 생략 여기서 예수님은 '합당하다'는 말을 세 차례 반복하시면서, 진정한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들을 제시하십니다. 이 '합당하다'는 말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인정받을 만한 가치와 품격을 갖추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제자도의 조건들이 무엇일까요?
첫 번째 조건: 가족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가족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들이 아닙니까? 우리를 낳아주시고 기르신 부모님, 우리가 사랑하는 자녀들, 함께 인생을 걸어가는 배우자, 어느 하나 우리에게 소중하지 않은 존재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더 깊은 헌신을 요구하신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제자도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이 첫째가 아니라면 누구든지 예수님 제자가 되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가족을 버리고 친구를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보다 친구보다 내가 사랑하는 그 무엇보다 더 큰 사랑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더 사랑할 때, 놀랍게도 우리의 가정은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삐그덕 거리던 것이 제자리를 찾게 되고 웃음과 기쁨을 회복하게 되고 오히려 더 주 안에서 화목하고 연합된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 안에서’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 조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매우 분명하고 생생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 하에서 십자가형은 가장 잔혹하고 수치스러운 처형 방법이었습니다. 형을 선고받은 죄수가 처형 장소로 대들보를 지고 가는 것은 그가 이미 죽은 목숨임을 뜻했습니다. 그는 사회적으로 완전히 배제되고,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상태였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세상의 가치관과 반대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세 번째 조건: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대적하는 세상에서 심한 다툼과 적대감에 직면할 때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친절하든 적의로 가득 차 있든 그들이 우리에게 하는 일은 그리스도와 하나님 모두에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가치와 타협하며 잠시의 평안을 얻으려 하지 말고 오직 주님께 합당한 자로 인정받기를 소망하시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나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을 최우선으로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썩지 않을 영원한 생명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우리 성산교회 성도님 여러분 모두가 세상과 타협하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강찬웅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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