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마태복음9:9-13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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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
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25년 6월 08일 설교 요약
본문: 마태복음 9장 9-13절 말씀
§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
예수님께서 세리 중에서도 이름이 ‘마태’라 불리는 자에게 찾아오셔서, 아무런 전제 조건이 없이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죄인 가운데서도 가장 낮고 멸시받는 자에게 먼저 다가가시는 분임을 선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경건해 보이지만 정작 하나님 나라에 마음을 닫은 자들보다, 비록 죄의 자리에 있었지만 그 심령이 가난한 자를 부르시는 주님의 모습이, 마태의 부르심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 저희는 본문 말씀을 살펴보면서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어떻게 대하시고, 어떤 마음으로 그들을 부르시고 또 그들과 함께 하시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라옵기는 우리 성산교회 성도님 여러분 모두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죄인들을 부르시고 죄인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오늘날 나에게 다가오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를 부르셨습니다.
9절 “생략” 당시 유대 사회에서 세리직을 맡은 사람들은 공공연히 미움받고 혐오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마 제국을 위해 세금을 걷으며, 동족 유대인들을 착취하고 배신한 자들로 여겨졌습니다. 실제로 많은 세리들이 실제로 정해진 금액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 사익을 챙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자들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디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쓰는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마태에게 가셔서 그를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 하셨을 때, 세리 마태는 아무런 군말 없이 즉시 그 부르심에 응답합니다. 단 한 마디도 망설이거나 조건을 달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 마태와 같은 파격적인 결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기 목숨을 다하시기 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부르심 앞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부르심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곧, 나의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주님이시라는 고백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붙잡고 있는 무언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물질, 명예, 안락함, 인간관계, 혹은 내가 세워놓은 계획들. 여러분 마태는 그것들을 과감히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예수님의 부르심에 전적으로 응답하기 위해서는 내려놓아야 할 '모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그 모든 것은 무엇입니까? 아직까지 내가 주님을 따름에 있어서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 붙들고 있는 것, 그것이 무엇이던 간에 주님 앞에 과감히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내가 채워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채워주시는 것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바라옵기는 우리 성산교회 성도님 여러분 모두가 세상의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것들을 채워가심으로 인생의 참된 목적을 깨닫고 주님을 따르는 그 복된 길을 걸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죄인과 함께 하셨습니다.
10-11절 “생략” 당시 유대 사회에서 ‘함께 음식을 먹는다’ 는 것은 식사를 넘어, 동료 의식을 표현하고 사회적 지위를 확인하는 상징적인 행위였습니다. 식탁을 함께한다는 것, 곧 누가 누구와 함께 먹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소속과 정체성이 드러나곤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모임에 함께 식사 자리를 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일정한 정결 예식을 치러야 했고, 신중한 선택이 수반되었습니다.
마태가 예수님을 위한 잔치를 베풀며 동료 세리들을 초대한 것도 이러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속해 있던 사회적 그룹, 곧 같은 직업을 가진 세리들을 초청함으로써, 예수님을 그들에게 소개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식사 자리에 모인 인물들의 구성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바로 세리들과 죄인들이지요. 예수님은 거룩함을 나누기 위해 죄인 곁으로 오셨으며, 빛이 어둠 속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 앞에 아무도 설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꼼짝없이 하나님의 심판을 맞아야 마땅한 자들, 그 심판 앞에 아무 변명도 할 수 없는 자들, 바로 우리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는 심판의 자리가 아니라, 예수님의 잔칫자리입니다. 그 은혜의 자리로 우리를 초청하신 주님께, 마음을 다해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부르러 오신 분이십니다.
12-13절 “생략”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율법 해석과 전통에 따라, 그 규범을 어기거나 지키지 않는 자들을 죄인이라 규정했습니다. 어디까지나 그들의 기준은 외적인 행위내지 율법 조항을 지키는 여부였지요. 결국 그들에게 있어서 죄란 규칙을 어기는 것이었고, 죄인은 그 규칙을 반복적으로 어긴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시선은 전혀 다른 곳에 향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겉모습이나 외적인 행위만을 보고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오늘 저희들에게 주어진 이 본문은 세리와 죄인들을 중심으로 한 예수님과 바리새인의 대조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중심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의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 중심점을 나에게 잡지 말고 하나님 앞에 잡을 때 우리는 스스로 얼마나 큰 죄악 가운데 있었는지 깨닫게 될 것이고 또한 그 죄로부터 나를 구원하셔서 의롭다 해주시는 그 은혜가 얼마나 감격이 되는지를 깨닫게 될 줄로 믿습니다.
바라옵기는 우리 성산교회 성도님 여러분 모두가 바리새인들과 같이 내가 중심이 된 잘못된 의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 중심이 하나님에게 감으로 감히 구원받지 못할 죄의 자리에 있었던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의롭다 하신 그 은혜에, 감격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산가족 여러분, 영상으로 참여하신 성도님 여러분 오늘은 저희가 본문 말씀을 살펴보면서 죄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세가지 메세지로 나누어 본문을 보았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를 부르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죄인과 함께 하셨습니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부르러 오신 분이십니다.
바라옵기는 우리 성산교회 성도님 여러분 모두가 죄인된 나를 부르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며, 주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강찬웅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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