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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 설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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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악하고 음란한 세대
운영자 2025.9.7 조회 33

2025년 09월 07일 설교 요약

본문:  마태복음 12장 38-45절 말씀

 

§ 악하고 음란한 세대 §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무언가 뚜렷한 하나님의 응답을 구할 때가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을 해결해달라거나, 물질적인 문제를 해결해 달라거나, 당장에 내가 믿을 수 있게끔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기를 바랄 때가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바램이 강하면 강할수록 우리에게 더욱 부각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조바심입니다. 이것이 더 심각해지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기에 까지 이르게 되지요. 이것은 대부분의 신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일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우리의 연약한 모습이 오늘 본문 속에 등장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종교지도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책망이 오늘 우리에게는 어떠한 영적 교훈을 주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흔들리는 세상의 가치관 속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가장 위대하고도 뚜렷한 표적이 무엇이며, 우리의 믿음이 어디에 굳건히 서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이미 우리에게 가장 위대한 표적을 주셨습니다. 

본문 38-42절 생략 예수님은 지금까지 그분이 메시아임을 보여주는 수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놀라운 기적들을 베푸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표적을 요구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가리켜 그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일갈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믿지 않으며 그저 표적만을 요구하는 온 이스라엘을 대표하여서 이들을 책망하고 계신 것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는 출애굽 때 반역했던 그 광야 세대를 일컫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종말에 있을 심판에서 니느웨 사람들이 증인이 되어 믿지 않는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할 것이다 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들은 요나가 전한 메시지를 듣고 회개했지만, 이 세대는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전하시는 메시지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였고, 이스라엘의 원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왕부터 백성까지 모두가 회개를 했습니다.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자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종교 지도자들은 요나보다 훨씬 크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심판 날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남방 여왕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스바의 여왕을 의미합니다. 

 

이 여왕도 유대인 지도자들처럼 솔로몬을 시험하고 싶어 가지고 어려운 문제들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의 지혜를 보고 듣고 난 이후 그녀는 감탄하며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솔로몬을 시험한 여왕은 믿었지만, 예수님을 시험하는 유대인 지도자들은 믿지 않습니다.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이 말씀하시는데도 말이지요.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 표적을 구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미 가장 확실하고 위대한 표적을 주셨습니다.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사건입니다. 이 부활의 능력보다 더 큰 증거는 없습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보다 더 위대한 기적은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흔들리는 세상의 기적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위에 굳건히 서야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성산교회 성도님 여러분 모두가 첫 사랑의 마음을 회복하심으로 나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표적에 감격하고 찬양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 우리의 신앙은 비움에서 채움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본문 43-45절 생략 43절을 보면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나갔다'는 표현은 스스로 떠났다는 의미가 아니지요. 이는 쫓겨났다는 의미입니다. 귀신이 자발적으로 떠난 것이 아니라 강제로 축출당했다는 의미인 것이지요. 이것은 예수님의 권능으로 귀신들이 쫓겨나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쫓겨난 귀신은 어디로 갔을까요? 43절 후반부를 보면 물 없는 곳이란 광야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귀신은 그 광야에서조차 원하는 쉴 곳을 얻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귀신들에는 완전한 안식을 찾아 거할 곳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안식처를 찾지 못한 귀신은 결국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44절을 보면 첫째, 집이 청소가 되어 있었습니다.  둘째, 수리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귀신이 머물기에 예전보다 훨씬 더 좋아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45절을 보면 귀신의 다음 행동이 나타납니다.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려와 함께 살기로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누구에게 무엇을 말씀을 하고 계신 것일까요? 이 귀신 들린 사람은 바로 종교 지도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이 세대'를 가리킵니다. 39절과 45절에서 언급된 '이 악한 세대'가 바로 그들이라는 것이지요. 우리의 신앙생활은 단지 악한 것을 버리고 죄를 멀리하는 소극적인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더러운 것을 비워내는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우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마음의 집에는 누가 주인으로 거하고 있는가?"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비움'에서 끝나서는 안 되며, 반드시 '채움'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죄를 멀리하고 악한 습관을 끊어내는 결단은 너무나 귀하고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한 것을 비워내는 소극적인 신앙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 그리고 성령으로 우리의 내면을 적극적으로 채워나가는 신앙으로 성장해가야 할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성산교회 성도님 여러분 모두가 날이 갈수록 주님을 닮아가고 그분의 은혜와 평강이 넘쳐나는 축복의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강찬웅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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